헤밍웨이 님의 평가
2025-09-25 14:06:51
⭐ 4.5점
인간은 자신의 생명력을 스스로 자각하기보다, 타인 혹은 동물과 같은 비(非)인간 존재의 낯선 생명력 앞에서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 누운 노인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걸 지켜볼 때, 일상적으로는 잘 느끼지 못하던 내 몸, 내 숨, 내 감각을 새삼스레 실감하는 것처럼. 「밝아지기 전에」의 인물들은 한겨울 풀숲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의 몸 앞에서, 그리고 “지글지글” 끓고 있는 타자의 심장을 응시하는 순간, 자신들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관념이나 감정이 아닌, 심장박동을 느끼거나, 듣는 것처럼 지극히 신체적인 반응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을 명료히 감각하는 순간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죽음의 경계에 놓인 타자의 몸, 말 없는 존재의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다. 죽음에 다다른 타자의 심장을 내려다보며, 그 위에 손을 올리는 은희 언니를 생각하며 화자가 “처음으로 은희 언니를 닮은 어떤 여자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은희 언니가 들려준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잊”을 만큼 강렬한 각성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은 언제 실감되는가? 그것은 생명체의 침묵에서, 말라붙은 눈동자나 멈춘 심장 곁에서야 비로소 명료해진다.